관리 메뉴

원남, 기록

1부 홈통 문제 8. 시간의 선로들 본문

공부/<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읽기

1부 홈통 문제 8. 시간의 선로들

원남 2017. 1. 15. 19:54

P. 52

  물론 슈바르츠발트의 뻐꾸기시계가 단연 눈에 띈다. 그 뻐꾸기시계를 만든 사람은 보헤미안 장인일 수도 있고, 일설에 따르면 1730년경 프란츠 안톤 케테러나 그의 아버지 프란츠일 수도 있다.

  뻐꾸기 시계를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Franz 가족으로 단정지을 순 없다. Franz anton Ketterer는 1734년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1730년에 뻐꾸기 시계를 만들었냐는 것이다. 그와 관련한 위키피디아 자료에 따르면 Dilger 가족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뻐꾸기 시계의 역사와 관련한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Dilger의 얘기는 상세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흠!


P. 53-54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간 살로공화국의 40년대는 거의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반면, 벨 에포크의 43년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벨 에보크Belle Epoque라는 뜻 자체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리즈시절 정도? 2017년 1월 9일자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보면 '한때 유럽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라서, 모든 유럽인들이 프랑스어를 했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내가 만약 프랑스인이라서 추억에 젖는다면 이때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La Belle Epoque: An Essay> (Philippe Jullian, Diana Vreeland 著, 1982)

INTRODUCTION P. 3 (벨 에보크 시대가 언제인지 설명한 다음)


  Paris was the center of the action. No city had ever been so well arranged to receive the world and, indeed, it did.

  파리는 행동의 중심지였다. 어느 도시도 이렇게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 된 적이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르네상스Renaissance('부흥'이라는 뜻)라는 단어에 시대적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벨 에보크도 단어 자체에서 그 의미와 프랑스의 대단하던 옛 시절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P. 54

  브로델 같은 위대한 역사가들은 시간 길이의 이런 수수께끼 같은 면, '동시대'라 부르는 것의 모호함과 다양한 가치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페르낭 브로델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La Méditerranée et le Monde Méditerranéen a l'époque de Philippe II로 일약 위대한 역사가 반열에 올라선 사람이다. 그의 행보에 대해 자세한 건 위키피디아 참조.


<Time's Reasons: Philosophies of History Old and New> (Leonard Krieger 著, 1989) P. 157

 Braudel becomes somewhat less confusing when his two ephases are chronologically spaced out, so that the rationalistic, external emphasis is associated with the early Braudel and the historistic, internal emphasis is associated with the later one.

 브로델은 초기에 합리주의적이고 외부적인 강조와 연관되어 있었으나 후기엔 내부를 강조하도록 하기 위해서, 두 시기가 시간적으로 떨어져있을 때 덜 혼란스러워졌다.


P. 159

  The upshot of Braudel's ambiguity has been his growing acceptance of "long-range structures" in history, despite his preference for middle range or "conjunctural history."

  그가 중거리 또는 "결합하는 역사"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브로델의 모호함이 불러온 결과는 역사에서 "넓은 범위의 구조"에 대한 수용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다뉴브>의 설명엔 그가 모호함과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보인다고 답했다. 위의 인용구를 보면 상반된 가치관(다양한 가치)에 대해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그의 모호함(어쩌면 다양한 가치로 치환될 수 있겠다.)을 집필함으로써 역사를 장기적인 측면까지 끌어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P. 54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고리차에 사는 사람, 주변 일상에서 그의 존재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동시대인이다.

  우리나라는 이 지명을 고리차와 고리치아를 혼용해서 사용하나보다. (구글 맵에는 고리치아로 명명됨.)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가 맞닿아 있는 부분에 있는 도시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였다. 나중에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오스트리아로부터 분열하기 직전에,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이 약해지는 걸 눈치채고 분열 시도 세력 중 가장 힘이 큰 헝가리와 손을 맺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만들었다. 그당시 통치구역을 시스라이타니아Cisleithania라고 하는데, 현재 슬로베니아 서쪽과 이탈리아 동쪽 끝을 아우르는 영토의 이름이 고리치아와 그라디스카Görz und Gradisca였다. 따라서 고리치아는 현재 이탈리아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왕실의 손안에 놓인 통치구역 중 하나였으므로, 프란츠 요제프에게 고리차에 사는 사람은 같이 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시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P. 54

  반면 비냘레 몬페라토에 사는 사람에게는 먼 시대 사람일 뿐이다.

  지역이 작아서 안보이지만 아래 지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다뉴브> 본문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먼 시대 사람이라고 판단한 까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비냘레 몬페라토 구역은 그들의 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이탈리아의 티롤 도시까지밖에 통치하지 않았다.)



P. 54

  스당 전투 시대에 이미 태어났고 한국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살아 있던 크누트 함순에게 두 전쟁은 어떤 점에서 하나의 지평 안에서 이해된다. 반면 1903년 아주 젊은 나이에 죽은 오토 바이닝거에게 두 전쟁은 각각 그가 태어나기 전의 과거이자 먼 미래로, 그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세계에 속한다.

  ※ 문헌을 찾기 이전에 스당 전투 주석란에 보면 이 전투는 1970년에 발발한 전투라고 하는데 아니다. 스당전투는 1870년이다! 그래야 1950년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에도 크누트 함순이 살아있다는 게 말이 된다.

 크누트 함순은 1859년에 태어나 1952년에 사망한 노르웨이 소설가로, <굶주림Sult>가 대표작이다. <흙의 혜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오토 바이닝거는 1880년에 태어나 1903년 사망했기 때문에, 스당 전투와 6·25전쟁을 모두 겪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 이 두 전쟁은 태어나기 전과 사망하고 난 다음 일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P. 54

  사람들과 사회계급의 감정과 행동을 가르는 '비동시성Ungleichzeitigkeit'은, 마르크 블로크가 썼듯이 역사와 정책의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다.

  마르크 블로크는 프랑스에 있던 역사학자로,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 된 것이다."(출처)를 기조로 한 아날학파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아날학파 이전의 역사학자들이 정보에 치중하여 백과사전 같은 정보전달에 치중한 역사관을 보여주었다면, 그는 아날학파 초창기 멤버로 <The Royal Touch: Sacred Monarchy and Scrofula in England and France>와 <French Rural History: An Essay on Its Basic Characteristics>에서 그의 비동시적 역사관을 알 수 있다.


P. 55

  일차대전의 결과와 한 문명의 종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인 불가리아의 패배를 상기하면서, 카로이 백작은 "그 순간에, '그 순간'은 아직 '그 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겪는 동안에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썼다.

  본문 1부 5장에서도 나오는 미하이 카로이Mihály Károlyi(독립한 헝가리의 초대 대통령). 영어판 <다뉴브> 에서는 카로이 백작의 말이 "at that moment, 'that moment' had not yet become 'that moment'"(p. 40)로 되어있는데 이 말의 출처는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P. 55

  제논은 활로 쏜 화살의 운동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매 순간 화살은 공간의 한 지점에 멈춰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의 연속은 운동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 살던 제논은 여러 역설을 말하면서 "만물이 흐른다"는 이론을 반대하는데, 그중 한 역설은 화살이란 어느 한 순간순간에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운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P. 55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삶은 뒤돌아봐야만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앞을 보며 살면서,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향하여 살아가야 할지라도 말이다.

  키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로, 과제는 어려워야 하고 그 어려움을 통해서만 우리의 고상한 마음에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어록 중에 "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must be lived forwards."라는 대목이 있는데, "인생은 뒤돌아볼 때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야 한다."라는 뜻이다. 얼추 본문과 맞닿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