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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 기록
1부 홈통 문제 9. 비술라 본문
P. 56
여인 조각상은 주변에 펼쳐진 정감 가는 언덕 지역 바아르를 형상화한 것이다.
바아르Baar는 윅셔너리에 따르면 Schwarzbald의 서쪽과 Schwäbischen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한다. 슈바르츠발트Schwarzbald가 다뉴브 강의 수원지로 언급되는 것을 보면 대략적으로 위치를 추측할 수 있다.
P. 56
빈에 있는 알베르티나미술관 건물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분수대의 상처럼 말이다. 부다페스트 엥겔스 광장에도, 미클로시 이블이 설계한 다누비우스 분수대에 원기왕성한 노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머리칼까지도 미켈란젤로의 모세상과 비슷하다.
알베르티나 광장(알베르티나플라츠Albertinaplatz)에 있는 분수대에 자리한 다누비우스 상
엘리자베스 광장(舊 엥겔스 광장)에 위치한 다누비우스 분수대와 거기 위에 있는 '원기 왕성한 노인'(...)
※ 본문에 보면 엥겔스 광장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옛날 이름이라서 검색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부다페스트 관광 홍보 웹사이트에 따르면, 원래 1946년에 처음 생길 당시 엘리자베스 광장이라고 붙여졌다가, 1953년에 엥겔스 광장Engels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다시 원래 이름인 엘리자베스로 고쳐졌다고 한다. <다뉴브> 본판은 1980년대에 쓰였기 때문에 엥겔스 광장이라고 표현했지만, 참고하길 바란다.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 모세상 (십계명을 들고 일어서려는 모세)
P. 56
다뉴브 강의 충실한 지류들인 티서 강, 드라바 강, 사바 강은 분수 상들 사이에서 상냥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루이지 페르디난도 마르실리 사령관의 훌륭한 책 『다누비우스 판노니코미시쿠스:지리학, 천문학, 수로학, 물리학적 관측』(1726)을 장식하고 있는 형상들도 다뉴브 강을 혈기왕성하고 남성다운 노인의 모습, 제왕처럼 당당하고 자비로운 사투르누스의 모습, (...)
앞서 설명한 엘리자베스 광장(엥겔스 광장)에 있는 다누비우스 분수대 아래쪽에 보면 여성의 모습을 한 3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름이 각각 티서, 드라바, 사바 강The Tisza, the Dráva and the Száva.이다.
마르실리 사령관Count Luigi Ferdinando Marsili이 지은 책에 장식하고 있는 형상이면 외관에서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책 표지를 아무리 찾아도 웅장한 모습은 잘 없다. 아무래도 내가 못찾는 게 아닌가 싶다.
P. 56
빈 범죄박물관에 있는 O. 프리드리히의 1938년 그림은 익사자의 시체를 형상화했는데, 제목이 '어머니 다뉴브 강'이다.
빈 범죄박물관은 존재하나 저작권 탓인지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P. 56-57
그러나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 자리한 베르니니의 분수에서 유럽을 상징하는 다뉴브 강은 성인 남성이다.
오드리 헵번 덕분에 아주 유명한 이 분수에서 조각상이 4개 있는데, 4대강을 상징한다. 그 중 Danubio가 유럽을 상징하는 다뉴브 강으로, 건장한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P. 57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아들인 어린 그라티아누스를 가르쳤던 수사학의 거장 데키무스 마그누스 아우소니우스의 시들이 그 점을 확인시켜준다.
데키무스 마그누스 아우소니우스Decimus Magnus Ausoniu는 <고귀한 도시의 질서Ordo urbium nobilium> 책과 『모젤강Mosella』 시로 유명하다. 이것도 공부해야 알 수가 있는데 자료가 잘 안보인다 ㅜㅜ
P. 57
로마군은 예상대로 승리해서 샬롱쉬르손의 패배를 설욕했고 아우소니우스는 여자 노예 한 명을 얻었다. 그는 그녀를 비술라라고 이름붙였다.
아우소니우스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자료(독일어)에 의하면, 비술라를 얻을 당시는 356-357년에 로마군과 알라마니족(알레마니족)과 전투가 있었을 때였다.
P. 57
그 손은 아주 멀리서 온 것이고, 그 손가락의 모양과 유혹을 만드는 데 빅뱅, 제 4기, 아시아의 초원에서 건너온 훈족의 이주가 아주 적으나마 협력했으니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제 4기는 인류가 출현한 시기다. 손 하나면 족하다고 했는데, 빅뱅을 통해 팽창우주가, 제 4기가 되면서 인간이 생겨났고, 훈족의 이주를 통해 비술라가 아우소니우스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을 암시한다.
P. 58
그의 고향이며 당시에는 부르디갈라라고 불린 보르도 출신의 그 선생은 6보격 시와 5보격 시를 세심하게 잘 만들어내는 기술자였지, 분명 시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약간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참고해야 한다. "그(아우소니우스)의 고향이며 부르디갈라(아우소니우스)라고 불린 보르도 출신"의 그 선생이 아니라 "그(아우소니우스)의 고향이면 부르디갈라(보르도)라고 불린 보르도 출신"의 그 선생이다. 부르디갈라가 사람 이름인 줄 알고 이해가 안되었는데, 보르도 지방의 옛 지명이다.
P. 58
분명 비술라는 아우소니우스를 따라 로마에 왔고, 그는 슈바벤에 남지 않았다.
슈바벤은 도나우 강 상류가 있는 지역으로, 바이에른 주 남서쪽에 위치한다.
P. 58 - 59
자신의 종족을 버리고 라벤나와 그 도시 성당의 수호자가 된 랑고바르드족 전사와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인디언 부족에 들어간 영국 귀부인, 이 두 사람은 같은 메달의 두 얼굴로서 신 앞에서 동등하다고, 보르헤스는 자신이 쓴 우화에서 이야기했다.
보르헤스의 단편인 『Doctor brodie's report』에서 이 예시를 확인할 수 있다.
P. 59
로마제국 최후의 위대한 수호자가 된 야만인 아에티우스와 스틸리코가 로마인과 그들의 나약한 황제들보다 더 로마인다웠듯이 말이다.
Last of the Romans라는 용어가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 문명의 가치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설명할 때 쓰곤 하는데, 이 그룹에 아에티우스와 스틸리코도 존재한다. 아에티우스는 서로마 제국 출신 장군으로, 훈족의 영토 확장을 저지시킨 바 있다. 스틸리코도 서로마의 황제로서 각종 역사가로부터 로마인의 긍지를 보여줬다는 얘기를 듣는다. (물론 이 두 명의 장수는 비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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