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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2. 다뉴브 강 상류 : 2164쪽에 5킬로그램하고도 900그램 본문

공부/<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읽기

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2. 다뉴브 강 상류 : 2164쪽에 5킬로그램하고도 900그램

원남 2017. 3. 1. 21:07

P.80 - 86


P. 80

  공학자 에른스트 네베클로프스키는 '오버레 도나우 Obere Donau' [...] 수세기의 세월 등을 한 뼘 한 뼘 세밀히 분석하여 분류하고 목록으로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다뉴브 강 상류에서의 항해와 래프팅』(1952~1964)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다뉴브 강이 아니라 조금 소박한 방식으로 이 강을 다룬다.

  https://regiowiki.pnp.de/wiki/Ernst_Neweklowsky에 따르면, 에른스트 네베클로프스키는 오버레 도나우(도나우 상류)에 지나가는 배들이나 흐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소박한 방식으로 이 강을 다룬다는 의미는 상류만 조사했기 때문인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다.


P.80

  좀더 협소한 지역적 관점에서 보자면, 바이에른 사람들은 다뉴브 강 상류가 레겐스부르크 다리에서 끝났다고 보고 수력발전소 회사에 그 이름을 붙였고, 독일 남부의 레겐스부르크와 파사우 사이의 짧은 지역을 '다뉴브 강 하류'라고 생각했다. 일차대전에 때 전자물자 수송과 관련된 전쟁 용어로, '다뉴브 강 상류'는 레겐스부르크와 죄뉘 사이의 물길로 이해되었다.

  (지명 왜이렇게 많아 제발... 그만...)

  레겐스부르크에 대한 위키백과 페이지에 따르면, 바이에른 주에 있고 다뉴브강이 흐르는 곳이라고 기술되어있다.

 

 

발전소 회사 이름이 레겐스부르크 발전소인데, 수력발전소가 다뉴브 강의 수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겐스부르크와 파사우 사이의 짧은 지역을 다뉴브 강 하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뉴브 강 전체 길이에 비하면 짧긴 짧다.


(죄뉘는 영어판을 봐야 하는데 아직 보지를 못했어서 일단 빈 칸으로 남겨놓겠다.)


P. 82

  모든 총체성은, 키르케고르가 당파적인 시각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던 헤겔의 총체성까지도 신들의 조소를 받는다.

  키르케고르는 이론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관을 매우 중요시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뭘 알아야 하지)보다는 실존(뭘 해야 하지)이 더 중요하다. 그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주창한 헤겔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나만이 가진 철학이나 가치관, 스스로가 생각한 진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겼다. 더 알고싶다면 네이버에서 써놓은 헤겔사전이라는 페이지를 참조하자.

  

P. 84

  뱃사공들의 은어와 말하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자연히 기존에 나와 있는 사전들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그것들을 해설하고, 논평하고, 그러다 못해 말문이 막히고 만다. J. A. 슐테스의 1819년 작품 『다뉴브 강 여행』에 내포된 언술에 흠뻑 빠져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밑줄 친 책에 대한 아마존 페이지에 따르면, 이 책은 1819년이 아니라 1809년에 출판되었다고 나온다. 둘 중에 하나는 잘못한 것 같은데?... 누군지를 모르겠네 허허. 

P. 85

  단어 고유의 맛과 색은 그 단어를 둘러싸고 있는 직접적인 맥락 안에서, 서로 거친 말을 주고받는 선원들(그들이 용맹한 술주정뱅이 악당들이라는 명성은 제국의 여러 우려 섞인 포고문에서 증명되었고,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 아무라함 아 산크타 클라라도 이를 확인시켜주었다) 사이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장편 소설 과 민중 언어>(미하일바흐찐 著, 1988, 창비) p. 213

  독일 문학은 대상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일련의 비유와 연상을 통해서 높은 수준의 담론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이러한 기법을 특별히 즐겨 쓰는 경향이 있다. 엣센바하에 의해 독일 문학에 소개된 이 기법은 [...] 17세기에는 아브라함 아 잔타 클라라의 설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탈리아어에선 아무라함이라고 하나보다. 아브라함 아 산크타 클라라는 메스키르히 근처에서 유명한 성직자이며 작가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의 그의 언어에 homeliness, 마음이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위의 인용구를 살펴보면 어려운 얘기를 대중에게 쉽게 풀어써주었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P. 86

  혁명, 공산주의, 역사에 대한 메시아의 구원 역시, 케스틀러나 다른 많은 사람이 겪었듯 신이 이를 배신했음을, 신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스완은 오데트를 뜨겁게 사랑하며 평생을 살다가 결국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위해 삶을 허비했음을 깨달았다.

  두산백과에 따른 아서 케스틀러(아서 쾨슬러라고 많이 언급된다.) 페이지에 따르면, 헝가리 출신 영국 소설가며 희곡도 집필한 적이 있다. <The GOD that failed>(1949)에 관한 위키백과 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아서 쾨슬러를 비롯한 6명의 (전 보수주의자)가 작성한 에세이를 담고 있다. 그들이 이 책에서 하는 내용은 공산주의에 대해 환멸과 포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이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 보수주의적 체제에 대한 환멸을 담았기 때문에 <다뉴브> 본판에서는 이를 신의 배신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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