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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5. 독일의 목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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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5. 독일의 목가

원남 2017. 3. 5. 10:00

P. 90 - 93


P. 90

  안티콰리우스는 울름을 '다뉴브 강가의 첫 수도'이자 '슈바벤의 아름다움'으로 칭송했다.


  1부 4장에 보면, 다뉴브의 안티콰리우스antīquárĭus(골동품 수집가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라고 불린 사람은 요한 헤르만 딜헬름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한국판 <다뉴브> 기준 35쪽) 영어판 다뉴브를 보면 66페이지에 'The antiquarius'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나왔던 사람을 지칭하는 정관사가 있기 때문에, 주석으로 35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한 번 언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60쪽 전에 있던 흔하게 등장하던 사람의 별명까지 기억하겠는가) 게다가 안티콰리우스라고 적어놓으니 무슨 고대사람 같기도 하고... 이 부분에선 똑똑하지 않은 나같은 독자를 위하여 충분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P. 90

  연대기들은 루트비히 크라프트 시장이 울름의 부를 과시하고자 자신의 주머니에서 금화 100플로린을 꺼내 성당의 첫 주춧돌을 덮었고, 다른 귀족들도 시장을 따라 금화와 은화 몇 줌을 주춧돌에 던졌으며, '저명한 시민들'과 '서민들'까지 따라했다고 전한다.


  루트비히 크라프트 시장은 울름 대성당에 주춧돌을 얹을 당시 울름의 시장이었다.


P. 91

  13세기의 법서 『슈바벤슈피겔』은 다양한 사회계급 조직의 자유와 독립을 성문화하고 있다. 여기서 애잔하고 고통스러운 독일의 목가, 자치주의, 사회적 분열, 윤리와 정치의 충돌, 하이네가 나중에 말했듯 '독일의 비참'이 우글우글 생겨났다.


  인터넷 백과사전 두산백과에 따르면, "슈바벤슈피겔은 원래 《황제의 란트법 및 봉건법서(封建法書)》라 칭하였고, 북독일에서 성립한 《작센슈피겔》을 남독일의 사정에 적합하도록 수정 ·개작한 것으로서 《도이첸슈피겔》이라는 법서가 만들어졌고, 그것을 다시 확충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이네Heinlich Heine는 <프랑스론>이라는 비평서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함으로써 독일에 대한 비참함을 설명했다.


P. 91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받은 티보는, 평등과 이성의 보편성을 앞세워 차이와 특권을 없애는 법을 주장했다. 사비니는 시민권을 주장하고 인간의 차이를 옹호하며, 이 차이가 유기적인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지 '추상적인' 합리주의의 산물이 아니라며, 인간의 차이를 옹호하는 법으로 티보에 맞섰다.


  두산백과(티보, 사비니)에 따르면 안톤 티보Anton Friedrich Justus Thibaut와 프리드리히 사비니Friedrich Karl von Savigny는 서로의 법적인 토대를 이루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소위 법정논쟁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티보는 모든 주에 서로 다른 법을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사비니는 법은 문화와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자연스레 바뀐다고 주창하였다.


P. 91

  18세기 오스나뷔르크의 대주교 유스투스 뫼저에게, 전체주의 폭군들로부터 독일의 옛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결국 농노제와 자유농민의 독립권을 옹호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독일 목가는 본질적으로 보수적 경향을 내면화한 것이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기하지 않으면서 계급 '본래의' 다양성을 따르라는 사도 바울과 루터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유스투스 뫼저는 시민과 농민들의 계층적인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을 보면 농민과 시민의 관계를 역사와 묶어서 생각한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일으키게 한 농민전쟁과 엮어본다면, 농민전쟁 후기와 이후에 루터가 농민들을 매도해서 배신을 한 점을 보면 위의 문장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