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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26. 필스호펜의 이중턱 본문

공부/<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읽기

2부 공학자 네베클로프스키의 보편적인 다뉴브 강 26. 필스호펜의 이중턱

원남 2020. 12. 3. 11:11

p.155 - 157


  필스호펜Vilshofen an der Donau이라는 지역은 독일 국경선에 있는 파사우의 바로 왼쪽에 위치한 도시다. 드디어 독일 탈출 직전이다. 읽은지 대체 몇 년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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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더 바이에른에 위치한 필스호펜에서 열린 재의 수요일 행사 모임은 몇 백 년전 가축시장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정치 모임이다. 얼마 전 파사우의 니벨룽겐할레로 일부 옮겨온 이 민속축제에서는 독일 기독교사회동맹CSU이 득세했다. 독일기독교사회동맹 소속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겉으로 봤을 때 당


  니더 바이에른 현Niederbayern은 바이에른 주Bayern의 일부분으로, 슈트라우빙이나 파사우와 함께 필스호펜까지 아우르고 있는 지역이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이다. 재의 수요일 모임Ash Wednesday Rally은 많은 정치가들이 모인다. 필스호펜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재의 수요일 모임에 정치가들이 그들의 지역에 한데 모인다. 


1975년에 슈트라우스가 재의 수요일에서 연설하는 모습(출처 : 위키피디아)


  파사우의 니벨룽겐할레Nibelungenhalle(니벨룽겐 홀, 줄여서 니하NiHa)는 국내에선 정보가 많이 없다. 왜냐하면 2004년에 철거된 이후 그 자리에 Dreiländerhalle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 집권 초기에 파사우를 첫 번째 의회도시Kongress-Stadt ersten Ranges로 만들기 위해서 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이 니벨룽겐 홀이다. 이곳에서 재의 수요일 행사 때마다 연설을 하곤 했는데, 1975년에 바로 후술할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야당을 신랄하게 까서 니벨룽겐 홀이 유명해졌다. 


Nibelungenhalle



'니벨룽겐 홀'은 파사우에 있는 게 사라진 덕분에, 현재는 검색하면 본 근처에 있는 건물이 더 유명하다. 쾨닉스빈터Koenigswinter(왕의 겨울이라는 뜻) 동네에 위치한 드라헨펠스Drachenfels라는 언덕에 위치한 건물(http://nibelungenhalle.de/)로, 드라헨펠스는 지크프리트 관련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이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트램엔 용 문양이 새겨져 있다.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osef Strauss는 내게 친숙한 이름이다. 뮌헨에 소재한 공항의 정식이름이 이 정치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에른 지역에 자리한 기독교사회동맹(CSU) 당수로 지냈다. 바이에른이 대표적인 보수 우호적인 도시인 만큼, 오랜 기간동안 바이에른 주의 주지사로 지냈다. 20세기 중반 당시에 100억에 달하는 뇌물 스캔들이 터졌고, 슈피겔 잡지 편집자들을 기소시키기도 했고, 거짓 증언한 사례도 있어서 장관에서 물러났다. 이처럼 논쟁적인 인물이지만 공항 건설에도 관심 있고 이 분야에선 기여도 많이 해서 그의 이름이 뮌헨 공항의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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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까지 필스호펜에서 슈트라우스와 기독교사회동맹은, 바이에른당과 그 당의 혈기왕성한 지도자 요제프 바움가르트너만큼 지지를 얻지 못했다.

  카를 아메리가 쓰기를, 바이에른당은 아직도 순전히 대중적이고 지방적이며 종교적인 이 전통에 뿌리박고 있었다.


  요제프 바움가르트너Joseph Baumgartner는 바이에른 국민당(BVP) 대표였다. 농무부 장관이기도 했고, 15년 정도 바이에른 의회 의원으로 지냈다. 참고로 바이에른 국민당은 당시 CSU보다 바이에른 내의 점유율이 높아 다수당이었지만, 카지노 사건Spielbankenaffäre을 기점으로 점점 쇠퇴해서 나중엔 CSU가 다수당이 되었다. 

  카를 아메리Carl Amery는 Christian Anton Mayer의 팬네임으로, 독일 본 출생이고 뮌헨대에서 공부한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였다. 바바리아(바이에른)에 대해 얘기할 법도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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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트겔라스는 진보와 이성을 앞세워 사회를 구속했던 정치기구, 관료조직이 이끄는 계몽주의 오스트리아를 만들었다.

  자코뱅당의 절대독재가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을 정정당당히 거부해온 것이다.


  몬트겔라스Maximilian von Montgelas는 독일 바이에른주의 뮌헨 출신인 바이에른 총리로, 사보이 공국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공부하였다. 그 당시엔 프랑스에서 계몽주의 사상이 열풍이어서 그런지 몬트겔라스는 계몽주의 사상에 흠뻑 젖었다.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에서 활동할 정도이니. 바이에른 최초로 

  자코뱅당은 몬트겔라스가 30대일 때 창당되었고 계몽주의 성격이 짙다. 지롱드당이랑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국민공회할 때 자코뱅당은 항상 왼쪽에 앉았기 때문에, "the left wing(좌익)"이라는 뜻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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