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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다뉴브 (6)
원남, 기록
먼저 부제목인 레겐스부르크가 도시 이름이기 때문에 독일에서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 구글 지도를 하나 띄우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번 챕터에서는 모르는 역사, 인물, 상황이 다른 것보다 많이 나와서 골칫덩이다.ㅠㅠ 레겐스부르크 구 시가지를 가면 중세유럽의 현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곧 가보지 않을까 생각!) 현 지도에서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도시인 파사우를 기점으로 검은 경계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선이다. 이 책을 정독하려고 노력한지 몇 달만에 드디어 독일을 벗어나겠구나! 책 기준으로 2부가 종료되고 나면 파사우를 벗어난다. P. 137-138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다룬 대중 서적인 민중본에도, 몇백 년동안 세계적인 경이의 대상이었던 레겐스부르크와 그곳 돌다리의 명성이 언급..
P. 134 나폴레옹의 지배에 대항한 독일 해방전쟁에서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1세가 세운 해방기념관 베프라웅스할레가 다뉴브 강가, 100미터 높이의 미헬스베르크 언덕에 자리한 작은 도시 켈하임에 세워졌다. 루트비히가 세운 해방기념관Befreiungshalle은 해방을 뜻하는 Befreiung과 홀을 뜻하는 halle의 합성어로, 우리나라 말로 쓰자면 베프라이웅스할레 정도가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해방의 전당, 해방 기념홀로 보아도 된다. 원기둥 모양의 특이한 외관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종류의 오르간을 볼 수 있으며 대부분 연주가능하다. 오르간 콘서트도 이곳에서 자주 진행하는 듯하다. 학생은 무료니까 교환학생 갈 때 꼭 들러야겠다. 켈하임 시의 사이트에서 발췌한 사진과 켈하임 사이트 URL을 게재해놓겠..
P. 97 - 99 P. 97 울름의 빵박물관에 있는 한 도표에는, 1914년과 1924년 사이 10년동안 빵 1파운드의 가격 변화가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울름Ulm 지방에 빵 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다. (박물관 이름을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빵문화 박물관이다.) 공식사이트는 여기에 달았고, 궁금하면 가보도록 하자.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도 '울름 빵박물관'이라고 치면 가본 분들이 많은 걸로 봐서, 인지도 있는 울름의 박물관인 듯 싶다. 입장료는 10유로정도 하여 가성비에는 의문점이 들지만, 흔치 않은 테마의 박물관이므로 한 번쯤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성당 들르기 전에 가봐도 괜찮을 듯!) 1914년부터 1924년까지의 빵 가격이 쓰여있는 도표 중 1923년에 유독 빵 1파운드의 가격이 ..
P. 95 - 97P. 95 1944년 10월 18일 폰 룬트슈테트가 참석한 가운데 롬멜 육군원수의 국장이 행해졌다. 폰 룬트슈테트는 제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이름을 날리던 군인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치를 땐 독일군 육군 원수였다. 이 사람은 7월20일 사건에 가담한 측이 아니고 가담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조용히 그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할에 더 주축을 두었다. [사진 1] 롬멜 육군원수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이름을 떨치며 원수로까지 격상된 그는 7월 20일 음모사건의 가해자들과 접촉했다는 사유로 (다른 장군들이 그의 가족의 신상은 지켜주겠다고 하여) 홀로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사진 2] P. 95 예를 들어헬무트 야메스 폰 몰트케가 용기 있게 나치 인민재판소와 교수형에 당당히 대면했듯이 말이..
6. 울름 정복P.93 - 94 P. 93 예를 들어 한 역사가는 1701년 루이 14세와 연합한 바이에른군 측에서 울름을 정복하기 위해 세웠던 비밀 계획을 기록해놓았다. 이를 기록한 역사가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7년 전쟁을 아주 자세히 기록하려고 노력하는 페이지 Kronoskaf가 바이에른 포병부대를 기록한 페이지에 따르면, 1901년이 아닌 1902년 9월즈음 울름을 정복했다고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나오면 란다우 포위전(1902) 페이지에 따라서도, 바이에른 선제후국(Electorate of Bavaria)이 참가한 후 울름을 정복했다고 소개한다. 7. 맨손으로 제3제국에 대항하다P.94 - 95P. 94 히틀러 정권에 반대하며 맹렬히 싸우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43년 처형당한 한스..
P.80 - 86 P. 80 공학자 에른스트 네베클로프스키는 '오버레 도나우 Obere Donau' [...] 수세기의 세월 등을 한 뼘 한 뼘 세밀히 분석하여 분류하고 목록으로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다뉴브 강 상류에서의 항해와 래프팅』(1952~1964)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다뉴브 강이 아니라 조금 소박한 방식으로 이 강을 다룬다. https://regiowiki.pnp.de/wiki/Ernst_Neweklowsky에 따르면, 에른스트 네베클로프스키는 오버레 도나우(도나우 상류)에 지나가는 배들이나 흐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소박한 방식으로 이 강을 다룬다는 의미는 상류만 조사했기 때문인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다. P.80 좀더 협소한 지역적 관점에서 보자면, 바이에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