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원남, 기록

[미래에셋 글로벌특파원 6기-독일] <다뉴브> 책 속 도시 탐방하기 (발할라, 레겐스부르크) 본문

독일 뮌헨공대(TUM) 교환학생 /3. 2017년 2학기

[미래에셋 글로벌특파원 6기-독일] <다뉴브> 책 속 도시 탐방하기 (발할라, 레겐스부르크)

원남 2017. 11. 29. 10:00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저서 <다뉴브>(도나우 강을 의미.)는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6명의 소설 속 인물이 중심으로 독일부터 루마니아까지 이어지는 다뉴브 강을 따라가며 극을 이끌기만, 그 지역 속에 담겨진 실제 역사, 문화, 인물을 책에 잘 녹여낸 조화로움은 실상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내가 교환학생을 위한 입국했을 당시, 다뉴브 강의 발원지이자 이 책의 처음에 기재된 도시인 슈바르츠발트Schwarzbald에 여행을 갈 예정이었으나, 그 기간에 발원지로 가는 열차가 아쉽게 수리중이어서 가지 못하였다. 또한 내가 있는 뮌헨공대로부터 슈바르츠발트로 가기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차선책으로 뮌헨에서 가까우면서도 다뉴브 강이 지나는 도시인 레겐스부르크에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감명받은 영화에 나오는 장소에 직접 탐방하러 갔으나, 나는 감명받은 책에 나오는 장소로 탐방하였다.

  <다뉴브> 책에선 레겐스부르크 근교에 있는 발할라까지 한 파트를 두어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뮌헨 근처에 있는 파사우 대신 이곳을 선택하였다. ( <다뉴브>는 디테일한 장소와 사람을 골라 한 챕터동안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철학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기사 특성상 객관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기재하였습니다.)


(1) 발할라Walhalla ( <다뉴브> 제 2부 19 )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에게 침격을 받고 독일은 프랑스에게 패배하여, 바이에른 지역을 지키는 루트비히 1세는 사실상 바이에른 지역의 왕이라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독일인이라는 자긍심은 그당시 모두 곤두박질쳤기 때문에, 루트비히 1세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가진 정체성의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발할라Walhalla다.

  이름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할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신화 속에서의 발할라는 전장에서 숨진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다가 낮에는 싸우고 밤이 되면 축제를 벌이는 장소다. 물론 이곳에서 자랑스러운 독일인들을 조각상으로 만들어서 매일매일 싸우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자축하며 위로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싶었나보다.

  이곳에 조각될 수 있는 은혜는 비단 독일인 뿐 아니라 독일어 혹은 독일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분야에 제대로 방점을 찍었던 위인들이 자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람들로는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막시밀리안 1세, 마틴 루터, 괴테, 슈베르트, 바흐, 베토벤 등이 있다. 



  발할라 측면 사진이다. 사진에 발할라 맨 왼쪽 기둥을 보면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이것을 통해 발할라가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에 있는 뜬금없는 그리스 느낌의 사원이지만, 레겐스부르크(정확히는 근교 다뉴브 강 옆에 위치한다.)를 상징하는 또다른 건축물이 되었다.


p.134

  외부 원형 정면은 열여덟 개의 석고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6미터 높이의 석고상들이 거대한 벽기둥 위에 자리하고 있다. 석고상들은 반나폴레옹 진영에 가담했던 열여덟 개의 독일 부족을 의인화한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건물 위쪽에 자그마한 상들이 위치하였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곳을 확대하여 촬영한 것으로, 열여덟 개의 석고상이 있다.



  건물 위쪽을 보면 조각품이 꽤 놓여져 있다. 처음 보았을 땐 몰랐는데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이 사람들이 반 나폴레옹 진영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직접 보았을 땐 굉장히 작아보였던 상들이 6미터나 되는지 몰랐다. 그만큼 발할라 건물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할라 내부 사진이다. 가운데에 루트비히 1세를 중심으로 양옆에 자랑스럽게 설치된 대리석 조각상들로 가득하다.

p.135

  헬라스와 헬라스의 독립전쟁을 낭만적으로 사랑했기에 자신의 아들 오토를 터키로부터 막 해방된 그리스 왕좌에 올려놓았던 루트비히 1세는, 독일의 영광을 기리는 또다른 기념관 발할라를 세우게 했다. 발할라는 레겐스부르크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다뉴브 강가에 세워진 도리스식 사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이름을 취한 고대 그리스식 흰색 사원은 그리스와 독일의 공생을 희망하는 상징물이다.

루트비히 1세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55591


  장엄한 자세로 발할라에 누구보다도 크게 조각된 루트비히 1세는 그리스식 건물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하여 이 장소를 만들었다. 당시에 다른 나라에 항복했더라도, 독일인은 그리스인의 학문적인 사상에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기둥을 보면 그리스의 흔한 도리스식 사원을 짓고 그 안에 대리석으로 깎은 50개의 조각상을 들여놓았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도 이러한 도리스식 기둥을 차용하였기 때문에 베를린에 다녀오셨다면 간파하기 쉽다.  


p.137

  사물들이 삶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되지만 사물들 역시 사라질 운명이며, 죽음의 고통 앞에서 진짜와 가자를 놓고 진짜를 찬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상기시켜준다. 살아 있는 사물들의 눈물, 이 거짓된 발할라의 도리아식 기둥들처럼 비록 가짜일지라도 좀더 오래 지속하고픈 그 갈망을 우리가 듣게 된다면, 살아 있는 사물들의 뜨거운 눈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바이에른 주 의회가 발할라에 조각상을 새로이 가져다놓는 사안에 대해 아직까지도 매년 의논하고 있다. 예전보다 더욱 발전한 점은 과거에 천대를 받은 유대인도 이곳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90년에 들어서 아인슈타인이 110번 숫자를 달고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에디트 슈타인이 2009년 129번째로 발할라에 들어았다. 바이에른 주 자체가 조금 보수층이 짙기 때문에, 의회에서도 이와 반대되는 사람들(반대측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마르크스를 꼽는다.)은 아직 입성하기는 어려우나, 발할라가 1년을 통틀어서 1명 받을까 말까한 것을 보면 때를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후보자들은 예술, 자연계, 철학가 등등 인종과 분야를 막론하다는 것을 보면, 발할라의 미래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

  물론 본문에 나온 "오래 지속하고픈 그 갈망"이라는 의미는 항상 좋은 의미를 내포하진 않지만,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현 사회와 발을 같이 하는 점,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 하는 점 등은 본받아야 마땅하다.


(2)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 제 2부 20 )


  레겐스부르크는 소금이 비쌌을 12세기 전후로 다뉴브 해역의 주요 루트였기 때문에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으나, 이후 루트가 바뀌면서 경제적으로 아쉬운 행보를 걸어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서지 않고, 그당시 혹은 후세에 사용하던 건물들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현재 레겐스부르크는 크리스마스 마켓, 레겐스부르크 다리, 다뉴브강, 대성당 등 "오래됨"이 다양한 형태로 새겨진 도시다. 현재 레겐스부르크는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에 한창이다. 하루만 더 늦게 왔어도 시작하고 있었을 터인데...! 멋진 크리스마스 마켓을 걸어놓지 못해서 아쉽다.


p.137

  연대기 작가들은 주교와 황제의 도시인 레겐스부르크의 호화로움을 기록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에서의 소금 광산 사업은 11-13세기에 호황을 이루었다. 당연히 이러한 호화로움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이에른 주의 수도가 뮌헨이기 이전에 이곳이 수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위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14세기에 마련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중심으로,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은 축조된 시절이 500년을 훌쩍 넘었다. 독일 특성상 레겐스부르크에서도 높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형태가 아니지만, 몇몇 커야 할 건물엔 큰 모습이라서 할 땐 한다는 느낌이었다. 


p. 138

  후손들은 향수에 젖어 과거의 흔적을 지킨다. 향수의 대상이 된 과거 사람들은 그 이전 시대의 유물과 추억을 소중히 가꾸었다.



  대성당 안의 모습. 성당은 14세기, 레겐스부르크 다리는 12세기, 카페는 17세기, 레겐스부르크 다리 앞에 놓여진 유명한 소시지 가게는 만들어진지 천 년도 더 된 가게다. 그덕에 겨울이 되면 다리는 수리하느라 건너지도 못하고, 대성당 외벽은 사계절 내내 재건축중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허물지 않고 그대로 지켜내려는 까닭은 표면적으로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도시 전체가 지정된 까닭이겠지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어디 가서도 살아 생전 체험하기 불가능한 몇 백년 된 바이에른 인프라를 생생하게 느끼려는 마을의 올곧은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자랑스럽게 자신의 마을에 대해 설명하는 가이드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가 다시금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p. 138

  레겐스부르크는 자신들의 도시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정문과 기둥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성당 바로 옆에서 열심히 돌을 만들고 있었다. 산성비 등으로 악화된 교회의 낡은 돌을 갈아끼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도시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측면은 자신들의 도시를 스스로 지켜나가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가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카페는 17세기부터 운영되었으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한다. 이렇듯 레겐스부르크에 가면 소세지 가게도 제일 오래되었고, 카페도 독일 최장기간 오픈하였으며, 예전 황금기 건물들 또한 그대로 보존하려고 애쓴다. 과거의 모습을 잃지 않고 하나하나 현재까지 그대로 수놓으려는 태도가 이곳저곳 눈에 띈다.


  유럽에 교환학생에 오면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독일은 해가 잘 안들어서 어느날 날씨가 좋아서 여행을 갑자기 갈 수 있고, 몇 달 전부터 초저가 비행기 티켓이 눈에 띄어서, 좋아하는 축구단이 있는 곳이어서, 그 나라 맥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등등...  나는 책에서 나온 단 몇 챕터를 읽고 레겐스부르크 도시에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았다. 책에서 나온 구절을 실사로 확인했을 때의 신기함, 즐거움, 나만 이 책을 읽고 이곳에 방문했을거라는 막연한 자부심이 나를 에워감쌌다. 이처럼 만약 여행에 가는 도시에 꼭 가야 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여행지를 다녀와도 교환학생 기간에 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Comments